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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한 장씩 읽기

위정편(爲政篇) 제11장 |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by Dr. Ryu | 논어 2026. 9. 6.

원문

子曰:「溫故而知新,可以為師矣。」

독음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簡體字

子曰:“温故而知新,可以为师矣。”

Pinyin

Zǐ yuē: “Wēn gù ér zhī xīn, kě yǐ wéi shī yǐ.”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공자가 말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 수 있다면, 스승이 될 만하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溫故而知新

온고이지신

 

이 구절은 오늘날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은 본래 ‘따뜻하게 하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이미 배우고 들은 것을 다시 살피고 되새긴다는 의미로 쓰였다. 주희의 『논어집주』에서도 溫을 尋繹, 곧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찾아가며 그 뜻을 풀어 살피는 것으로 설명한다. 는 이전에 배우고 들은 것, 즉 ‘옛것’이며, 은 그 과정을 통해 새롭게 얻게 되는 이해를 가리킨다.

 

따라서 溫故는 단순히 과거의 내용을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배웠던 것을 다시 읽고 생각하면서 그 안의 의미를 새롭게 살피는 과정에 가깝다. 知新 역시 전혀 관계없는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얻는다는 뜻이라기보다, 옛 배움을 다시 익히는 과정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뜻을 새롭게 깨닫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가운데의 는 앞의 溫故와 뒤의 知新을 이어 준다. 옛것을 익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溫 / 故 / 而 / 知 / 新
익히다·되새기다 / 옛것을 / 그리고 / 알다 / 새것을

 

즉, “옛것을 다시 익혀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라는 뜻이다.

 

주희는 이 점을 특히 중요하게 보았다. 이미 배운 것을 때때로 되새기면서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그 배움이 자신의 것이 되며, 단순히 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한자 뜻과 읽기

溫(따뜻할 온) · 故(옛 고) · 而(말 이을 이) · 知(알 지) · 新(새 신)

 

2. 可以為師矣

가이위사의

 

可以는 두 글자가 함께 쓰여 ‘~할 수 있다’, ‘~할 만하다’라는 뜻을 만든다. 는 여기에서 ‘되다’라는 뜻이고, 는 ‘스승’을 가리킨다. 마지막의 는 어떤 판단이나 상태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다. 따라서 可以為師矣는 문자 그대로 “스승이 될 수 있다”, 또는 문맥에 맞게 “스승이 될 만하다”라고 옮길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可以 / 為 / 師 / 矣
~할 수 있다 / 되다 / 스승이 / ~이다

 

즉, “스승이 될 만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공자가 말하는 스승의 자격은 단순히 오래 공부했거나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데 있지 않다. 앞의 溫故而知新이 그 조건이다. 이미 배운 것을 되풀이할 줄 알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배운 것을 살아 있는 이해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자어류』에서도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溫故而知新은 살아 있는 배움이고, 질문에 대한 답을 기억해 두는 학문은 죽은 배움”이라는 취지로 구분한다. 옛것을 지키기만 하고 새로운 뜻을 얻지 못한다면 배우는 사람의 새로운 질문에 충분히 응답할 수 없으므로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한자 뜻과 읽기

可(옳을 가) · 以(써 이) · 為(할 위) · 師(스승 사) · 矣(어조사 의)


뜻을 풀어 읽기

「溫故而知新,可以為師矣。」

 

짧은 한 문장이지만, 공자는 여기에서 배움이 어떻게 깊어지는지를 아주 간결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미 배운 것을 다시 돌아본다. 그러나 그 목적은 기억을 확인하거나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데 있지 않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뜻을 새롭게 발견하고, 과거의 지식이 지금의 경험과 만나면서 전보다 깊은 이해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서 溫故와 知新은 서로 떨어진 두 가지 활동이라기보다 하나의 배움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옛것만 지키면 배움은 굳어 버릴 수 있고, 반대로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새것만 좇으면 배움에 뿌리가 약해질 수 있다. 공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해가 생겨나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뒤의 **「可以為師矣」**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반복해서 되새기고, 새로운 상황과 질문 앞에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배움을 열어 줄 수 있다.

 

스승은 과거의 정답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배운 것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오늘날까지 ‘온고지신’이라는 말로 살아남은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새로움은 반드시 과거를 버리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오래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배경과 맥락

이 구절은 『논어』 위정편 제11장에 있으며, 원문은 **「溫故而知新,可以為師矣。」**로 전한다. Chinese Text Project의 『논어』 위정편에서도 같은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을 ‘尋繹’, 즉 이미 배운 것을 거듭 찾아 살피는 것으로, 를 예전에 들은 것, 을 지금 새롭게 얻은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예전에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면서 매번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면 배운 것이 자기 안에 자리 잡아 여러 상황에 응할 수 있으므로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단순히 남에게 들은 내용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전달하는 記問之學은 마음에서 스스로 얻은 것이 없고 아는 범위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사람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주자어류』에서는 이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溫故而知新은 ‘살아 있는 것’이고, 기억해 두었던 지식만 전달하는 학문은 ‘죽은 것’이라는 취지이다. 옛것을 지키기만 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학습자의 새로운 질문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장을 직전의 제10장과 함께 읽어보면 또 하나의 흐름도 보인다. 제10장에서 공자는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 눈앞의 모습 하나만 보지 말고 행동과 과정, 마음이 머무는 곳까지 깊이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제11장에서는 배움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살피고 새로운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장의 직접적인 연결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위정편에서 배움과 판단이 단순한 표면을 넘어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흐름을 읽어볼 수 있다.


Dr. Ryu’s Reflection

溫故而知新.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말인데,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그 의미가 달라지는 구절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젊었을 때 ‘온고지신’을 들으면 대개 옛것을 배우고 거기에서 새것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기초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지금은 溫故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故’, 곧 이미 지나온 것이 많아진다. 공부했던 것, 해 왔던 일, 만났던 사람, 잘했던 선택과 후회가 남는 선택까지 삶 속에 쌓여 간다. 젊은 사람에게 옛것은 주로 책 속의 지식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자신의 경험 자체도 하나의 ‘옛것’이 된다.

 

그런데 경험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했어도 그것을 다시 돌아보지 않으면 단지 오래된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오히려 “나는 이미 해 봤다”, “그건 다 안다”는 생각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 점에서 공자가 말한 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것 같다. 다시 보는 것이다.

 

예전에 옳다고 생각했던 판단을 지금의 눈으로 다시 보고,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놓친 것은 없었는지 돌아보며, 실패라고만 생각했던 경험에서도 지금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그렇게 다시 바라볼 때 과거는 고정된 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이해의 재료가 된다.

 

나는 특히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는 知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방식이 계속 등장한다. 예전에 배운 것과 경험만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하려고 하면 어느 순간 세상과 거리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경험을 모두 버리고 새것만 따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옛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과거의 경험을 다시 해석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온고지신은 젊은 사람보다 오히려 나이가 든 사람에게 더 중요한 말일 수도 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돌아볼 ‘故’는 많아지지만, 그 안에서 계속 ‘新’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그다음에 「可以為師矣」,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점도 인상적이다. 스승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처럼 느껴진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살피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배움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태도도 아닐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방식을 정답처럼 이야기하기보다, 그 경험을 오늘의 상황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비로소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생의 후반부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 있을지 모른다. 새롭게 시작하는 배움은 과거를 지워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이 새로운 배움과 만나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새로 배워야 할까?’라는 질문만큼이나 다른 질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가운데, 지금 다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새로운 배움은 언제나 완전히 낯선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참고

  • 『論語』, 「爲政篇」 제11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爲政第二」.
  • 朱熹, 『朱子語類』, 「論語六·爲政篇下·溫故而知新章」.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