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子曰:「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독음
자왈: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簡體字
子曰:“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Pinyin
Zǐ yuē: “Jūnzǐ zhōu ér bù bǐ, xiǎorén bǐ ér bù zhōu.”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사사로이 편당하지 않고, 소인은 사사로이 편당하되 두루 어울리지 않는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君子周而不比
군자주이불비
君子는 『논어』에서 배움과 수양을 통해 바람직한 인격을 갖추어 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번 장에서 핵심은 周와 比의 차이에 있다. 周는 본래 ‘두루하다, 널리 미치다’라는 뜻이다. 주희의 『논어집주』에서는 周를 「普遍」, 곧 널리 두루 미치는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 比는 오늘날 중국어의 ‘비교하다’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문맥에서는 가까이 붙어 무리를 이루거나 한쪽에 치우쳐 편당한다는 뜻이다. 주희는 이를 「偏黨」, 곧 한쪽으로 치우친 편당이라고 풀이한다.
가운데의 而는 ‘~하지만, ~하면서도’라는 흐름으로 앞뒤를 연결한다. 따라서 周而不比는 단순히 “사람을 많이 사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과 널리 관계를 맺으면서도 특정한 사람이나 무리와의 사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판단을 흐리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君子 / 周 / 而 / 不比
군자는 / 두루 어울린다 / 그러나 / 사사로이 편당하지 않는다
즉, “군자는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되 사사로운 편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다만 이를 모든 사람과 똑같은 정도로 가까워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사람에게는 당연히 가까운 가족과 친구가 있고 서로 다른 정도의 친밀함이 있다. 공자가 문제 삼는 것은 친밀함 자체라기보다, 사적인 친분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에 더 가깝다. 주희는 周와 比 모두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포함하지만, 周는 公, 즉 공적인 마음에서 나오고 比는 私, 즉 사사로운 마음에서 나온다는 차이를 강조한다.
한자 뜻과 읽기
君(임금 군) · 子(아들 자) · 周(두루 주) · 而(말 이을 이) · 不(아닐 불) · 比(견줄 비)
2. 小人比而不周
소인비이불주
小人은 『논어』에서 단순히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을 뜻한다고 보기보다, 군자와 대비되는 태도와 인격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는 공적인 기준보다 자신의 이익과 가까운 관계를 앞세우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 문장과 어순이 정확히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君子周而不比
군자는 周하지만 比하지 않는다.
小人比而不周
소인은 比하지만 周하지 않는다.
이 대조가 이번 장의 의미를 매우 선명하게 만든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小人 / 比 / 而 / 不周
소인은 / 편당한다 / 그리고 / 두루하지 않는다
즉, “소인은 사사로운 편을 만들고 두루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논어주소』에서는 周를 忠信, 곧 충실하고 믿음 있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하고, 比를 阿黨, 즉 사사로이 한편이 되어 서로 두둔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표현 방식은 주희의 해석과 조금 다르지만,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붙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태도를 경계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통한다.
따라서 소인의 문제는 단순히 친구가 적거나 인간관계가 좁다는 데 있지 않다. ‘내 사람’과 ‘남의 사람’을 먼저 나누고, 그 구분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데 있다.
한자 뜻과 읽기
小(작을 소) · 人(사람 인) · 比(견줄 비) · 而(말 이을 이) · 不(아닐 불) · 周(두루 주)
뜻을 풀어 읽기
이번 장은 아주 짧지만 인간관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두 가지 모습을 선명하게 대비한다.
「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군자는 두루 어울리지만 사사로운 편을 만들지 않고, 소인은 편을 만들지만 두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전에서도 이 문장은 바로 앞의 「先行其言,而後從之」 뒤에 이어져 있다.
여기에서 공자가 말하는 周를 단순히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로 이해하면 의미가 조금 약해진다. 누구와도 갈등하지 않고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군자라는 뜻은 아니다. 옳지 않은 일에는 반대할 수도 있고, 모든 사람과 똑같이 가까울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사적인 친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가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는 눈감아 주고,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 같은 일을 하면 엄격하게 비판한다면 그 판단은 공정하다고 하기 어렵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는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는 쉽게 외면한다면 역시 周보다 比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주희는 두 글자의 차이를 결국 公과 私의 차이로 설명했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만 보면 周와 比가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는 공적인 마음에서 널리 사람을 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친분을 중심으로 사람을 가르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이번 장은 ‘친구를 많이 사귀라’는 인간관계의 조언이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 관계에 판단을 맡기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속한 무리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 밖의 사람들을 함부로 배제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태도라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만들게 된다. 문제는 가까움이 곧 편가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군자는 관계를 맺지만 관계에 갇히지 않는다.
배경과 맥락
이 구절은 『논어』 위정편 제14장으로, 원문은 **「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이다. 이어지는 제15장에서는 공자가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즉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의 문제를 말한다.
전통 주석 가운데 주희의 설명은 이번 장을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그는 周를 普遍, 比를 偏黨으로 풀이하면서 두 가지 모두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을 포함할 수 있지만 그 출발점이 다르다고 보았다. 周는 公에서 나오고 比는 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겉으로는 작아 보여도 결국 이 공적인 마음과 사사로운 마음 사이의 차이에서 갈린다고 설명한다.
『논어주소』에서는 조금 다른 표현으로 周를 忠信, 比를 阿黨이라 풀이한다. 군자는 사람을 충실하고 믿음 있게 대하지만 사사로운 무리를 만들어 서로 아첨하거나 두둔하지 않으며, 소인은 그 반대라는 설명이다.
『논어』에는 이번 장과 비슷한 구조의 유명한 구절이 뒤에 다시 등장한다. 자로편에서는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곧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조건 같아지지는 않고, 소인은 겉으로 같아 보이지만 진정한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주희 역시 周比와 和同을 서로 관련된 군자·소인의 대비로 함께 거론한다.
이런 구절들을 함께 보면 공자가 인간관계를 단순히 ‘사이가 좋은가 나쁜가’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이 보인다. 어떤 원칙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가, 그리고 친밀함 속에서도 자신의 판단과 공적인 기준을 지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했다.
직전 제13장에서는 군자의 말과 행동을 다루었고, 이번 제14장에서는 군자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말한다. 하나의 의도된 연속 설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위정편의 이 부분에서 군자의 모습이 행동과 인간관계라는 서로 다른 측면을 통해 이어서 제시되고 있다고 읽어볼 수 있다.
Dr. Ryu’s Reflection
「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이 구절을 읽으면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여러 조직과 사람 관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느 사회에서든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가까워지고, 함께 일해 온 사람끼리 신뢰를 쌓으며, 자연스럽게 작은 관계망을 만든다. 그것 자체는 이상한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그 관계가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누는 기준으로 바뀔 때 생기는 것 같다.
같은 행동을 해도 가까운 사람이 하면 이해해 주고, 다른 사람이 하면 비판하기 시작한다. 우리 쪽의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지만 다른 쪽의 말은 내용을 충분히 듣기도 전에 의심한다. 그렇게 되면 사실이나 원칙보다 ‘누가 말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나는 여러 나라와 조직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았던 것 같다. 문화가 달라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과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그런 관계가 의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관계가 너무 강해지면 오히려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문이 좁아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장의 周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周는 모든 사람과 똑같이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도 가까운 사람이 있고 덜 가까운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친밀함의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까지 친밀함에 맡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의 잘못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고,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면 인정할 수 있으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말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이다. 말로 표현하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어렵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곳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래서 주희가 周와 比의 차이를 公과 私 사이의 아주 미세한 차이라고 본 설명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마음속 기준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관계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는 ‘내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어떤 사람과도 편견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온 경험이 길어질수록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면 편하다. 설명할 것도 적고 서로 이해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런 관계만 계속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범위도 함께 좁아질 수 있다.
반대로 나와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은 때로 불편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관계 속에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周而不比」를 오늘의 말로 읽을 때 ‘누구의 편인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먼저 보려는 태도’라고 이해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편을 완전히 만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으며 내가 속한 공동체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사람을 사랑하되, 그 밖의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 것.
내 편의 목소리를 듣되, 다른 편의 말도 들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가까움과 옳음을 서로 혼동하지 않는 것.
아마 이것이 이번 장에서 공자가 말한 周와 比 사이의 아주 작은 듯하면서도 큰 차이일 것이다.
참고
- 『論語』, 「爲政篇」 제14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爲政第二」.
- 何晏 注, 邢昺 疏, 『論語注疏』, 「爲政第二」.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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