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孟懿子問孝。子曰:「無違。」
樊遲御,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
樊遲曰:「何謂也?」
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
독음
맹의자문효. 자왈: “무위.”
번지어, 자고지왈: “맹손문효어아, 아대왈: ‘무위.’”
번지왈: “하위야?”
자왈: “생, 사지이례; 사, 장지이례, 제지이례.”
簡體字
孟懿子问孝。子曰:“无违。”
樊迟御,子告之曰:“孟孙问孝于我,我对曰:‘无违。’”
樊迟曰:“何谓也?”
子曰:“生,事之以礼;死,葬之以礼,祭之以礼。”
Pinyin
Mèng Yìzǐ wèn xiào. Zǐ yuē: “Wú wéi.”
Fán Chí yù, Zǐ gào zhī yuē: “Mèngsūn wèn xiào yú wǒ, wǒ duì yuē: ‘Wú wéi.’”
Fán Chí yuē: “Hé wèi yě?”
Zǐ yuē: “Shēng, shì zhī yǐ lǐ; sǐ, zàng zhī yǐ lǐ, jì zhī yǐ lǐ.”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어기지 않는 것이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을 때 공자가 그에게 말했다.
“맹손이 나에게 효에 대해 묻기에, 나는 ‘어기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번지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며, 예로써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孟懿子問孝
맹의자문효
孟懿子는 노나라의 대부였던 맹의자를 가리킨다. 問은 ‘묻다’, 孝는 ‘효’를 뜻하므로, 문장은 “맹의자가 효를 물었다”라는 간단한 구조이다. 그러나 여기서 問孝는 단순히 ‘효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 그치지 않고, 부모를 어떻게 섬기는 것이 올바른 효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위정편에서는 이 장부터 효에 관한 질문이 연이어 등장한다. 제5장에서는 맹의자가, 제6장에서는 맹무백이, 이어 자유와 자하가 차례로 공자에게 효를 묻는다. 같은 ‘효’를 묻지만 공자의 대답은 매번 다르다. 이것은 효가 하나의 행동 규칙만으로 설명되는 개념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孟懿子 / 問 / 孝
맹의자가 / 물었다 / 효를
즉,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물었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孟(맏 맹) · 懿(아름다울 의) · 子(아들 자) · 問(물을 문) · 孝(효도 효)
2. 子曰:「無違。」
자왈: “무위.”
無는 ‘없다’ 또는 ‘~하지 말다’, 違는 ‘어기다, 거스르다’라는 뜻이므로 無違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어기지 않는다’ 또는 ‘거스르지 않는다’가 된다. 문제는 이 문장에 무엇을 어기지 않는 것인지 목적어가 나타나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두 글자만 따로 읽으면 ‘부모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효이다’라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공자는 뒤에서 無違의 뜻을 설명하면서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섬김과 돌아가신 뒤의 장례와 제사를 모두 禮(예)와 연결한다. 따라서 이 장 전체의 흐름에서 無違는 단순히 부모의 모든 뜻이나 명령에 복종한다는 의미보다, 부모를 섬기는 과정에서 마땅한 도리와 예를 어기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희도 『논어집주』에서 無違를 「不背於理」, 곧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이 해석은 뒤에서 공자가 禮를 세 차례 반복해 설명하는 이유와도 잘 연결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無 / 違
~하지 않는다 / 어기다
즉, “어기지 않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子(아들 자) · 曰(가로 왈) · 無(없을 무) · 違(어길 위)
3. 樊遲御,子告之曰
번지어, 자고지왈
樊遲는 공자의 제자 번지이다. 御는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다스리다’라는 뜻이 아니라 이 문장에서는 수레를 몰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告는 ‘알리다, 말해 주다’이고, 之는 앞에서 나온 번지를 가리키므로 子告之曰은 “공자가 그에게 말하였다”라는 뜻이다.
맹의자와의 문답은 이미 끝났지만 공자는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을 때 그 대화를 다시 꺼낸다. 이 장에서 이 장면이 들어간 이유는 뒤에 이어지는 설명과 관계가 있다. 맹의자에게는 無違라고 짧게 답했지만, 번지가 그 뜻을 다시 묻자 공자는 자신이 무엇을 ‘어기지 않는다’고 말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樊遲 / 御 / 子 / 告之 / 曰
번지가 / 수레를 몰다 / 공자가 / 그에게 알리다 / 말하기를
즉,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을 때 공자가 그에게 말했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樊(울타리 번) · 遲(더딜 지) · 御(거느릴 어) · 子(아들 자) · 告(고할 고) · 之(갈 지) · 曰(가로 왈)
4. 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
맹손문효어아, 아대왈: “무위.”
여기서 孟孫은 앞의 孟懿子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 맹의자는 노나라의 유력 가문인 맹손씨 계통의 인물이기 때문에 공자가 번지에게 앞선 대화를 전하면서 ‘맹손’이라고 부른 것이다.
於我의 於는 행위가 향하는 상대를 나타내므로 ‘나에게’라는 뜻이고, 對는 여기에서 ‘마주하다’가 아니라 질문에 ‘대답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我對曰은 “나는 대답하여 말했다”라는 의미이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孟孫 / 問孝 / 於我
맹손이 / 효를 물었다 / 나에게
我 / 對曰 / 無違
나는 / 대답하여 말했다 / 어기지 않는다고
즉, “맹손이 나에게 효를 묻기에, 나는 ‘어기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라는 뜻이다.
공자가 번지에게 자신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것은 無違라는 두 글자만으로는 그 뜻이 충분히 분명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때문에 번지는 다음 문장에서 그 의미를 다시 묻는다.
한자 뜻과 읽기
孟(맏 맹) · 孫(손자 손) · 問(물을 문) · 孝(효도 효) · 於(어조사 어) · 我(나 아) · 對(대답할 대) · 曰(가로 왈) · 無(없을 무) · 違(어길 위)
5. 樊遲曰:「何謂也?」
번지왈: “하위야?”
何는 ‘무엇’, 謂는 ‘말하다, 이르다, 뜻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何謂也는 직역하면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정도가 되며, 문맥에 맞게 옮기면 “무슨 뜻입니까?”가 자연스럽다.
번지의 질문은 이 장을 읽는 독자가 無違를 보고 품을 수 있는 의문과도 같다. 무엇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인가? 부모의 말씀인가, 부모의 뜻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기준인가? 공자는 이 질문을 받은 뒤 비로소 자신이 말한 無違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何 / 謂 / 也
무엇을 / 이르다·뜻하다 / ~입니까
즉, “무슨 뜻입니까?”라는 의미이다.
한자 뜻과 읽기
樊(울타리 번) · 遲(더딜 지) · 曰(가로 왈) · 何(어찌 하) · 謂(이를 위) · 也(어조사 야)
6. 生,事之以禮
생, 사지이례
生은 여기에서 부모가 살아 계신 때를 뜻한다. 事는 흔히 ‘일’이라는 명사로 알고 있지만 이 문장에서는 동사로 쓰여 ‘섬기다’라는 뜻이며, 之는 부모를 가리킨다. 以禮는 ‘예로써’, 또는 ‘예에 맞게’라는 뜻이다.
따라서 공자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 않고, 禮로써 섬기라고 말한다. 이 禮는 단순히 겉으로 갖추는 의례적인 형식만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적절한 방식이 있으며, 효의 마음 역시 그러한 기준 안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生 / 事之 / 以禮
살아 계실 때 / 그들을 섬긴다 / 예로써
즉,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긴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生(날 생) · 事(섬길 사) · 之(갈 지) · 以(써 이) · 禮(예도 례)
7. 死,葬之以禮,祭之以禮
사, 장지이례, 제지이례
死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를 가리키고, 葬은 ‘장례를 치르다’, 祭는 ‘제사를 지내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葬과 祭 뒤에 각각 以禮가 붙는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장례와 제사까지 같은 기준인 禮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앞의 無違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공자가 설명하는 효의 전 과정에서 반복되는 말이 바로 禮이기 때문이다. 살아 계실 때도 禮, 장례를 치를 때도 禮, 제사를 지낼 때도 禮이다. 그러므로 無違는 적어도 이 장의 문맥에서는 부모의 뜻을 무조건 거스르지 않는다는 의미로만 좁히기보다, 부모를 섬기는 전 과정에서 禮와 마땅한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읽는 것이 더 잘 맞는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死 / 葬之 / 以禮 / 祭之 / 以禮
돌아가시면 / 장례를 치른다 / 예로써 / 제사를 지낸다 / 예로써
즉, “부모가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고, 예로써 제사를 지낸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死(죽을 사) · 葬(장사지낼 장) · 之(갈 지) · 以(써 이) · 禮(예도 례) · 祭(제사 제)
뜻을 풀어 읽기
이 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말은 공자의 짧은 대답인 **「無違」**이다. ‘거스르지 않는다’는 말만 놓고 보면 효란 부모의 말씀이나 뜻을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효를 부모에 대한 순종과 가깝게 이해해 온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게 읽히기 쉽다. 그러나 공자는 無違라는 두 글자를 말한 뒤 그 뜻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번지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禮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禮로 장례를 치르며, 禮로 제사를 지내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禮가 세 번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효의 기준을 부모의 기분이나 요구에 두지 않고 부모를 섬기는 사람이 지켜야 할 마땅한 방식에 둔다.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통 주석에서 無違를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장을 오늘의 기준으로 곧바로 ‘부모의 말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바꾸어 읽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가 말한 핵심은 복종과 불복종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모를 섬기는 마음에도 그것을 바르게 표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이유로 분수를 넘어서거나 올바른 도리를 벗어난다면 그것 역시 효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 효는 단순한 감정이나 순종이 아니다. 부모를 존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함께 바르게 서 있을 때 비로소 효가 완성된다. 마음이 깊은 것과 행동이 바른 것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공자는 그 둘을 연결하는 기준으로 禮를 제시하고 있다.
배경과 맥락
맹의자(孟懿子)는 노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하기(何忌)이다. 그는 노나라에서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맹손씨(孟孫氏), 곧 중손씨(仲孫氏) 가문의 인물이었다. 당시 노나라에서는 계손씨·맹손씨·숙손씨로 이루어진 이른바 삼환(三桓) 가문이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자는 이러한 유력 가문들과 정치적·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전통 주석은 이 장에서 맹의자라는 인물의 위치에도 주목한다. 주희의 『논어집주』는 당시 삼가(三家)가 자신의 신분에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는 의례를 행하는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공자가 맹의자에게 효를 말할 때 禮를 강조한 배경을 그와 연결해 해석한다. 부모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의례를 행하면 그것은 이미 禮를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효를 말하면서 오히려 예의 기준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부터 위정편 제8장까지는 효에 관한 문답이 연속해서 배치되어 있다. 제5장의 맹의자에게는 無違와 禮, 제6장의 맹무백에게는 부모가 자식의 병을 걱정하는 마음, 제7장의 자유에게는 단순한 봉양을 넘어서는 공경, 제8장의 자하에게는 얼굴빛과 태도의 어려움이 강조된다. 같은 효를 묻지만 공자는 질문자마다 다른 문제를 짚어 준다.
이러한 배열을 보면 『논어』에서 효는 하나의 간단한 정의로 끝나는 덕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무엇을 해 드리는가만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어떤 기준에 따라 관계를 맺는가가 함께 중요하다. 위정편의 효에 관한 네 장은 바로 그 여러 층위를 차례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Dr. Ryu’s Reflection
효라는 말을 들으면 어린 시절에는 가장 먼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을 떠올렸던 것 같다.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효자라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어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덕목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이번 장의 「無違」, 곧 ‘거스르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 접하면 공자 역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효의 핵심으로 보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뒤의 설명까지 천천히 읽어 보면 내게는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공자는 부모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하지 않고, 살아 계실 때에는 禮로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禮로 장례를 치르고, 다시 禮로 제사를 지내라고 말한다. 부모에게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해 드리느냐보다 그 마음과 행동이 어떤 기준 위에 서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젊을 때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주로 자식의 자리에서 생각하게 된다. 부모님께 무엇을 해 드려야 하는지, 말씀을 얼마나 잘 따라야 하는지,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다. 자녀가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만이 아니라, 부모는 자녀에게 어디까지 기대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생긴다.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경계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간섭할 수도 있고, 자녀는 부모를 위한다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형편을 넘어선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 모두 좋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그것이 항상 좋은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자가 말한 禮를 단순히 옛날의 의례 규칙으로만 읽지 않는다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가 지켜야 할 마땅한 선과 방식이 있다는 말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효 역시 많이 한다고 반드시 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를 위해 큰돈을 쓰거나 거창한 일을 하는 것보다 평소의 말과 태도 속에서 존중을 잃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반대로 부모의 모든 기대를 그대로 따르는 것만이 효라고 생각하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장을 읽으며 나는 공자가 효를 말하면서 왜 ‘사랑’이나 ‘순종’보다 禮를 강조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관계는 마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야 좋은 마음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효라는 말은 자녀에게 요구할 덕목이 아니라, 부모인 나 자신이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올바른 거리와 방식일 것이다.
참고
- 『論語』, 「爲政篇」 제5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爲政第二」.
- 何晏 注, 邢昺 疏, 『論語注疏』, 「爲政第二」.
- 楊伯峻, 『論語譯注』, 中華書局.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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