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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편(學而篇) 제12장 | 조화를 이루되, 원칙을 잃지 말라

by Dr. Ryu | 논어 2026. 8. 29.

원문

有子曰:「禮之用,和為貴。先王之道,斯為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독음

유자왈: “예지용, 화위귀. 선왕지도, 사위미. 소대유지, 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簡體字

有子曰:“礼之用,和为贵。先王之道,斯为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礼节之,亦不可行也。”

Pinyin

Yǒu Zǐ yuē: “Lǐ zhī yòng, hé wéi guì. Xiān wáng zhī dào, sī wéi měi. Xiǎo dà yóu zhī, yǒu suǒ bù xíng. Zhī hé ér hé, bù yǐ lǐ jié zhī, yì bù kě xíng yě.”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유자가 말했다.

“예(禮)를 행하는 데에는 조화가 귀하다. 옛 성왕들의 도에서도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크고 작은 일에 모두 이를 따르지만, 그렇게 해도 행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조화만을 추구하면서 예로써 그것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禮之用,和為貴

예지용, 화위귀

 

는 흔히 ‘예절’이라고 번역하지만, 『논어』에서의 禮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사법이나 격식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진다.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규범과 질서, 의례와 행동의 기준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는 앞의 禮와 뒤의 用을 연결하여 ‘예의 쓰임’ 또는 ‘예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관계를 만든다. 은 ‘쓰다, 사용하다, 행하다’라는 뜻이다.

 

는 ‘화합하다, 조화를 이루다’라는 뜻이며, 為貴는 ‘귀하게 여기다’, ‘귀한 것으로 삼다’라는 의미이다. 는 여기에서 ‘~로 여기다, ~로 삼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의 목적이 사람을 형식에 얽어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禮 / 之 / 用
예 / ~의 / 쓰임은

 

和 / 為 / 貴
조화를 / 삼는다 / 귀한 것으로

 

한자 뜻과 읽기

禮(예도 례) · 之(갈 지) · 用(쓸 용) · 和(화할 화) · 為(할 위) · 貴(귀할 귀)

 

2. 先王之道,斯為美

선왕지도, 사위미

 

先王은 문자 그대로는 ‘옛 왕들’을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과거의 군주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가에서 이상적인 통치의 모범으로 생각했던 옛 성왕들을 가리킨다.

 

先王之道는 ‘옛 성왕들의 도’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던 원리와 방식을 의미한다.

 

는 ‘이것, 이와 같은 것’이라는 지시어이며 앞에서 말한 禮의 실천에서 和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為美는 ‘아름답게 여기다’, 또는 ‘훌륭한 것으로 삼다’라는 뜻이다. 즉 유자는 조화를 중시하는 것이 개인적인 처세술이 아니라 옛 성왕들이 추구했던 바람직한 질서의 중요한 원리였다고 말하고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先王 / 之 / 道
옛 성왕들 / ~의 / 도는

 

斯 / 為 / 美
이것을 / 여긴다 / 아름답게

 

한자 뜻과 읽기

先(먼저 선) · 王(임금 왕) · 之(갈 지) · 道(길 도) · 斯(이 사) · 為(할 위) · 美(아름다울 미)

 

3. 小大由之,有所不行

소대유지, 유소불행

 

小大는 ‘작은 것과 큰 것’, 즉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뜻한다. 由之는 ‘따르다, 말미암다’라는 뜻이며, 는 앞에서 말한 원리, 곧 예의 실천에서 조화를 중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小大由之는 ‘크고 작은 일에 이것을 따른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有所不行이라는 반전이 나온다. 有所~는 ‘~하는 바가 있다’, ‘~한 경우가 있다’라는 구조이며, 不行은 ‘행해지지 않는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앞에서는 분명히 和를 귀하게 여긴다고 했지만, 여기에서는 조화라는 원칙만 가지고 모든 일을 처리하려 하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이 뒤에 이어지는 중요한 제한 조건을 준비하고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小 / 大 / 由 / 之
작은 일과 / 큰 일이 / 따른다 / 이것을

 

有 / 所 / 不行
있다 / 바가 / 행해지지 않는

 

한자 뜻과 읽기

小(작을 소) · 大(큰 대) · 由(말미암을 유) · 之(갈 지) · 有(있을 유) · 所(바 소) · 不(아닐 불) · 行(행할 행)

 

4.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이 문장이 제12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知和而和에서 知和는 ‘조화의 중요성을 알다’라는 뜻이며, 이어지는 而和는 ‘그래서 조화를 이루려고 하다’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즉 조화가 좋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不以禮節之에서 는 ‘~으로써’, 는 예, 은 ‘절제하다, 조절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는 앞에서 말한 和의 추구를 가리킨다. 따라서 ‘예로써 그것을 절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亦不可行也는 ‘이 또한 행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은 ‘또한’, 不可는 ‘~할 수 없다’, 은 ‘행하다’라는 의미이다.

결국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한 균형을 보여준다. 예는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하지만, 조화를 이루겠다는 이유로 예와 원칙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知 / 和 / 而 / 和
안다 / 조화를 / 그리고 / 조화를 추구한다

 

不 / 以 / 禮 / 節 / 之
않는다 / ~으로써 / 예로 / 절제한다 / 그것을

 

亦 / 不可 / 行 / 也
또한 / 할 수 없다 / 행하다 / ~이다

 

한자 뜻과 읽기

知(알 지) · 和(화할 화) · 而(말 이을 이) · 不(아닐 불) · 以(써 이) · 禮(예도 례) · 節(마디 절) · 之(갈 지) · 亦(또 역) · 可(옳을 가) · 行(행할 행) · 也(어조사 야)


뜻을 풀어 읽기

제12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은 아마도 「禮之用,和為貴」, 즉 ‘예의 쓰임에서는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구절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和為貴, ‘화위귀’라는 표현은 오늘날에도 사람 사이의 화합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말만 떼어놓고 보면 『논어』가 무엇보다 갈등을 피하고 서로 좋게 지내는 것을 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제12장을 끝까지 읽어보면 유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유자는 먼저 和가 중요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형식만 강조하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면 예의 본래 취지를 잃을 수 있다. 예는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바르게 만들고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유자는 곧바로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라고 덧붙인다. 조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무조건 조화만 추구하면서 예로써 그것을 조절하지 않는 것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和와 禮의 관계가 선명해진다.

禮만 있고 和가 없으면 관계가 경직될 수 있고, 和만 있고 禮가 없으면 관계의 기준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잘 지내기 위해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모른 척하고, 원칙을 계속 양보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조화라고 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갈등이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불만과 문제가 쌓일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원칙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상황에서 규칙만 내세우고 상대방의 사정이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은 조화냐 원칙이냐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유자는 둘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을 존중하고 관계의 조화를 이루되, 그 조화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기준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다.

 

2500여 년 전의 짧은 문장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직장, 조직과 사회에서도 여전히 익숙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배경과 맥락

이 장의 화자인 유자(有子)는 유약(有若)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학이편에서는 제2장에서도 유자가 등장하여 「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 즉 효와 제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라는 생각을 이야기했다. 제12장에서 그는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지만, 이번에는 禮와 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고대 중국에서 禮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예절’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었다. 일상적인 몸가짐에서부터 가족과 사회의 관계, 의례와 제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질서와 규범을 포함했다. 따라서 「禮之用」을 단순히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방법’ 정도로 좁혀 읽으면 이 장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전통 주석에서는 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해석의 차이가 있었다. 『論語注疏』에서는 禮와 樂의 상호 관계라는 맥락에서 和를 樂과 연결해 설명하는 전통이 확인된다. 반면 후대의 여러 해석에서는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사람과 사회의 조화와 화합으로 읽는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더라도 禮가 경직된 형식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핵심은 분명하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후반부이다. 「和為貴」만 따로 인용하면 이 장은 화합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원문은 곧바로 그것을 제한한다. 「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즉 禮로 조절하지 않는 和 역시 제대로 행해질 수 없다고 한다. 현대 번역에서도 이 부분은 조화를 추구하더라도 禮가 행동을 규율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제12장은 『논어』가 말하는 조화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차이를 없애는 것이 和가 아니라, 일정한 기준과 질서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和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禮와 和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禮가 관계의 경계와 기준을 세운다면 和는 그 관계가 사람답고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만든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면 본래의 목적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장이 보여주는 중요한 균형이다.


Dr. Ryu’s Reflection

이 장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흔히 갈등이 없는 관계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가족끼리 다투지 않고, 친구끼리 의견이 부딪치지 않으며, 직장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좋은 말을 주고받으면 관계가 원만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오랫동안 여러 조직과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면서 가능하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지내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 방식만 옳다고 생각해서는 함께 일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和為貴」,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말에는 쉽게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되었다.

 

갈등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관계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 불편해질까 봐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 조직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넘어가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도 상대방이 서운해할까 봐 자신의 생각을 숨길 때가 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평화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평화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은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불만이 쌓이고, 원칙이 조금씩 무너지며, 결국 더 큰 갈등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장의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조화를 원한다고 해서 기준까지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禮를 오늘날의 삶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를 사람 사이에서 서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경계와 원칙으로 읽어보고 싶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조직에는 구성원들이 함께 인정할 수 있는 규칙이 있으며, 사회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

 

생각해 보면 진정으로 오래가는 관계는 모든 의견이 같은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이 달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오래갔다. 때로는 의견이 부딪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고, 상대의 입장을 들으면서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을 쉽게 버리지 않는 관계가 더 단단했다.

 

특히 여러 문화권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무엇이 ‘예의’인지조차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문화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다른 문화에서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내가 배려라고 생각한 행동을 상대는 부담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내 기준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내 기준을 모두 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이해하면서 함께 지킬 수 있는 새로운 경계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禮와 和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다투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실제로 사소한 일까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삶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조금 양보하고, 조금 기다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은 분명 삶의 지혜이다.

하지만 양보와 회피는 같지 않다. 조화와 무원칙도 같지 않다.

 

『논어』의 이 짧은 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유자는 和為貴라고 말하고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禮로써 조화를 절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장을 오늘의 말로 이렇게 기억하고 싶다.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좋은 관계란 서로의 원칙을 버리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관계이다.

 

조화를 이루되 원칙을 잃지 않는 것. 원칙을 지키되 사람을 잃지 않는 것.

아마도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배우며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공부인지도 모른다.


참고

  • 『論語』, 「學而篇」 제12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 學而篇.
  • 何晏 集解·邢昺 疏, 『論語注疏』, 學而篇.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Xue Er.
  • Slingerland, Edward. Confucius: Analects: With Selections from Traditional Commentaries. Hackett Publishing, 2003.
  • Watson, Burton. The Analects of Confucius.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