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편(學而篇) 제6장 | 먼저 사람답게 살고, 남는 힘으로 글을 배워라

원문
繁體字
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汎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
독음
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簡體字
子曰:“弟子入则孝,出则弟,谨而信,泛爱众,而亲仁。行有余力,则以学文。”
Pinyin
Zǐ yuē: “Dìzǐ rù zé xiào, chū zé tì, jǐn ér xìn, fàn ài zhòng, ér qīn rén. Xíng yǒu yúlì, zé yǐ xué wén.”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공자가 말했다.
“젊은이는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손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고 믿음을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를 행하고도 남는 힘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弟子入則孝,出則弟
제자입즉효, 출즉제
弟子는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스승의 제자’라는 뜻으로만 읽기보다, 여기에서는 젊은 사람이나 자제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入은 ‘들어가다’라는 뜻인데 이 문장에서는 집 안, 즉 가정에서의 생활을 가리키며, 出은 집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상황을 뜻한다.
則은 ‘곧, ~하면’이라는 의미로 앞뒤를 연결한다. 孝는 부모를 공경하고 정성껏 섬기는 것이며, 弟는 여기에서 ‘아우 제’가 아니라 ‘공손할 제’로 읽는다. 형이나 연장자를 공경하는 태도, 즉 제(悌)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태도를 집 안과 집 밖이라는 두 공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弟子 / 入 / 則 / 孝
젊은이는 / 집에 들어가서는 / 곧 / 효도하고
出 / 則 / 弟
밖에 나가서는 / 곧 / 공손한다
학이편 제2장의 「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에서 등장했던 孝弟가 여기에서 다시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자 뜻과 읽기
弟(아우 제) · 子(아들 자) · 入(들 입) · 則(곧 즉) · 孝(효도 효) · 出(날 출) · 弟(공손할 제)
2. 謹而信
근이신
謹은 ‘삼가다, 신중하다’라는 뜻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而는 앞뒤 내용을 연결하며, 信은 믿음과 신의를 뜻한다. 따라서 謹而信은 단순히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학이편 제4장에서 증자는 「與朋友交而不信乎」라고 자신을 돌아보았고, 제5장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으로 「敬事而信」이 등장했다. 그리고 제6장에서도 다시 信이 나온다. 학이편 초반에서 신뢰가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부터 공동체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자 뜻과 읽기
謹(삼갈 근) · 而(말 이을 이) · 信(믿을 신)
3. 汎愛衆,而親仁
범애중, 이친인
汎은 ‘널리’라는 뜻이며, 愛衆은 ‘여러 사람을 사랑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汎愛衆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라는 뜻이다.
이어지는 親仁은 해석할 때 조금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親은 ‘가까이하다’라는 뜻이며, 여기의 仁은 전통적인 주석에 따라 ‘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親仁은 어진 사람을 가까이한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 구절을 함께 읽으면 흥미로운 균형이 나타난다.
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자신이 가까이하며 배우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을 갖는 것과 누구와 가까이 지낼 것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汎 / 愛 / 衆
널리 / 사랑한다 / 여러 사람을
而 / 親 / 仁
그리고 / 가까이한다 / 어진 사람을
한자 뜻과 읽기
汎(넓을 범) · 愛(사랑 애) · 衆(무리 중) · 而(말 이을 이) · 親(친할 친) · 仁(어질 인)
4. 行有餘力,則以學文
행유여력, 즉이학문
行은 앞에서 말한 여러 덕목을 실제 생활에서 행하는 것을 뜻한다. 有餘力은 ‘남는 힘이 있다’는 뜻으로, 餘는 ‘남다’, 力은 ‘힘’이다.
이어지는 則以學文은 ‘그러면 文을 배운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文은 오늘날의 문학이나 글쓰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대의 문헌과 전적, 예악을 비롯한 문화적·학문적 교양을 폭넓게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자칫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공자가 배움을 가볍게 여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이편의 첫 문장이 바로 「學而時習之」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배움의 순서에 있다. 글을 많이 알고 지식을 쌓기 전에 먼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자 뜻과 읽기
行(행할 행) · 有(있을 유) · 餘(남을 여) · 力(힘 력) · 則(곧 즉) · 以(써 이) · 學(배울 학) · 文(글월 문)
뜻을 풀어 읽기
이 장을 처음 읽으면 마지막 문장인 「行有餘力,則以學文」, 즉 “이를 행하고도 남는 힘이 있으면 글을 배워라”라는 말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이라고 하면 먼저 학교 공부와 지식 습득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가 이 장에서 먼저 제시한 것은 책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밖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공손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고, 신뢰를 지키며, 사람을 널리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실천한 뒤에 文을 배우라고 한다.
그렇다고 지식이나 공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을 담을 사람의 바탕을 먼저 만들라는 뜻에 가깝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며, 약속을 쉽게 어기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 지식이 과연 좋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汎愛衆,而親仁」도 오늘날 다시 생각해 볼 만한 구절이다. 사람을 널리 사랑하라는 말은 누구를 배척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열린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와 가까이 지내고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을 것인가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것과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이 장은 공부보다 인성을 강조하는 단순한 교훈이라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 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교육의 순서를 이야기하고 있다.
배경과 맥락
학이편 제6장은 제2장과 함께 읽으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제2장에서 유자는 「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라고 하여 효와 제가 인을 실천하는 근본임을 이야기했다. 제6장에서는 그 생각이 젊은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 규범으로 펼쳐진다.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고 신뢰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 장은 가정의 윤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선은 집 안에서 집 밖으로, 가까운 관계에서 여러 사람에게로 점차 넓어진다. 孝에서 弟로, 謹과 信으로, 다시 汎愛衆과 親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면 한 사람이 관계의 범위를 넓혀가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읽힌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로소 學文이 등장한다. 학이편 제1장에서 배움으로 시작했음에도 제6장에서는 배움에 앞서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논어』에서 배움이 단순한 지식의 축적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배우는 사람의 삶과 행동이 함께 변하지 않는다면 배움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文은 오늘날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과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은 아니다. 시(詩)와 서(書), 예(禮)와 악(樂)을 비롯한 전통적인 문화와 학문적 교양을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則以學文」은 단순히 “남는 시간에 책을 읽어라”라는 말보다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실천한 위에서 문화와 학문을 배워 자신의 교양을 넓혀가라는 의미에 가깝다.
Dr. Ryu’s Reflection
이 장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교육의 순서를 거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좋은 학교에 가고, 많은 지식을 배우고, 필요한 자격을 갖추면 훌륭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부와 전문적인 지식은 중요하다. 나 역시 오랫동안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왔고, 지금도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세계를 배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많이 아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이 반드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니며, 학력이 높은 사람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항상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지식은 사람에게 능력을 줄 수 있지만, 그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결국 그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고, 약속을 지키며,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기꺼이 배우려 했던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특히 「汎愛衆,而親仁」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을 널리 사랑하면서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라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과 똑같은 거리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조금씩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동료를 만난 것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지막의 「行有餘力,則以學文」도 지금 시대에 문자 그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부는 남는 시간에만 하는 일이 아니며, 오늘날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교육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장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많이 배우는 것만큼 배운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생활 속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때로는 더 어렵다. 부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사람을 공손하게 대하는 것, 약속한 일을 지키는 것,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려는 마음을 갖는 것. 공자는 이런 것들을 먼저 이야기한 뒤에야 글을 배우라고 했다.
250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 구절을 “공부하지 말고 먼저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로 읽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읽으면 공자가 평생 강조했던 배움의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읽고 싶다. 배움과 사람됨을 따로 떼어놓지 말라. 배우는 만큼 살아보고, 살아가는 만큼 다시 배워라. 어쩌면 그것이 학이편 첫 장에서 시작된 「學而時習之」, 즉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는 말이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참고
- 『論語』, 「學而篇」 제6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 學而篇.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Xue Er.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 관련 한문·한자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