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편(爲政篇) 제15장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원문
子曰:「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독음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簡體字
子曰:“学而不思则罔,思而不学则殆。”
Pinyin
Zǐ yuē: “Xué ér bù sī zé wǎng, sī ér bù xué zé dài.”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공자가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學而不思則罔
학이불사즉망
學은 ‘배우다’, 思는 ‘생각하다, 깊이 헤아리다’라는 뜻이다. 가운데의 而는 앞뒤의 내용을 이어 주며 여기에서는 ‘배우지만 생각하지 않으면’이라는 흐름을 만든다. 則은 앞의 조건에 따른 결과를 나타내어 ‘그러면, 곧’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구절에서 특히 중요한 글자는 마지막의 罔이다. 현대적으로는 ‘막막하다’, ‘어둡다’, ‘얻는 것이 없다’ 등 여러 방식으로 번역된다. 『논어주소』는 배우고도 그 뜻을 스스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罔然無所得」, 곧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여기의 罔은 단순히 정보를 잊어버린다는 뜻이라기보다, 배운 내용을 자신의 이해로 만들지 못해 마음속에 분명하게 자리 잡은 것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주희의 관련 설명에서도 비슷한 방향이 나타난다. 책을 읽고 어떤 일을 배우더라도 그 안의 이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운 상태에 머물러 실제로 얻는 것이 없다고 풀이한다. 특히 『주자어류』에서는 學을 책 읽기에만 한정하지 않고, 어떤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것까지 넓게 설명하면서 배움과 생각이 서로를 밝혀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學 / 而 / 不思 / 則 / 罔
배우다 / 그러나 /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면 / 얻는 것이 없다
즉,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제대로 얻는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공자가 여기에서 비판하는 것은 배움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배우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만 스승의 말이나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고, 왜 그런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식이 자신의 이해로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자 뜻과 읽기
學(배울 학) · 而(말 이을 이) · 不(아닐 불) · 思(생각 사) · 則(곧 즉) · 罔(없을 망)
2. 思而不學則殆
사이불학즉태
앞 문장과 정확히 반대되는 구조이다. 앞에서는 學은 있지만 思가 없는 경우를 말했고, 이번에는 思는 있지만 學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殆는 본래 ‘위태롭다, 위험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이 구절의 殆 역시 전통 주석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왔다.
『논어주소』에서는 배우지 않고 혼자 생각하기만 하면 끝내 그 뜻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정신만 피로하고 지치게 된다고 풀이한다.
주희의 관련 설명에서는 생각만 하고 실제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없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주자어류』에는 이를 “마음이 불안정해진다”, 또는 실제 일에서 익숙해지지 못해 어설프고 위태로운 상태에 머문다는 취지의 설명이 반복해서 나온다. 따라서 殆를 단순히 큰 위험에 빠진다는 뜻으로만 읽기보다, 근거 없이 생각만 이어 가면서 확신도 안정도 얻지 못하는 상태까지 포함하여 이해할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思 / 而 / 不學 / 則 / 殆
생각하다 / 그러나 / 배우지 않는다 / 그러면 / 위태롭다
즉,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진다”라는 뜻이다.
앞의 구절과 함께 읽으면 공자의 뜻이 더 분명해진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고, 반대로 자신의 생각만 믿어도 충분하지 않다. 배움은 생각할 재료와 기준을 제공하고, 생각은 배운 것을 자신의 이해로 바꾸어 준다.
한자 뜻과 읽기
思(생각 사) · 而(말 이을 이) · 不(아닐 불) · 學(배울 학) · 則(곧 즉) · 殆(위태할 태)
뜻을 풀어 읽기
이번 장은 서로 대칭되는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먼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많은 내용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왜 그런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완전히 자신의 배움이 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지식은 늘었지만 그 지식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罔이라고 했다.
반대로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 생각한다. 배우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계속 밀고 나가면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 위에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새로운 사실이나 다른 사람의 관점과 만나지 못하면 생각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안에서 반복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殆라고 했다.
두 문장을 함께 놓고 보면 공자가 어느 한쪽을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學과 思가 서로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배움은 생각을 위한 재료를 주고, 생각은 배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배우다가 의문이 생기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다가 부족함을 느끼면 다시 배워야 한다. 그렇게 배움과 생각이 오갈 때 이해가 조금씩 깊어진다.
따라서 이 장을 단순히 “공부할 때 생각도 많이 하라”는 학습법 정도로만 읽으면 의미가 좁아질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것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신의 판단을 만들어 가는 방식에 더 가깝다.
남이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적으로 믿지도 않는 것.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배우는 것.
그것이 공자가 말한 배움의 균형이다.
배경과 맥락
이 구절은 『논어』 위정편 제15장이다. 원문은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로 전하며, Chinese Text Project에서도 같은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앞 제14장의 「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와 다음 제16장의 「攻乎異端,斯害也已」 사이에 위치한다.
『논어주소』는 이 장을 매우 분명하게 「教學法」, 곧 배우고 가르치는 방법을 말한 장으로 설명한다. 스승에게 배운 뒤에는 그 뜻을 스스로 생각해야 하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다. 반대로 스스로 생각만 하고 배움을 구하지 않으면 끝내 뜻을 얻지 못하고 정신만 피로해진다는 것이다.
후대의 주희 역시 學과 思를 긴밀하게 연결해서 설명했다. 『주자어류』에서는 學이 단지 책을 읽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실제 일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도 포함한다고 여러 차례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배우면 그 이치를 생각해야 하고, 생각한 것은 다시 실제 배움과 익힘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일과 생각이 서로 밝혀 주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 구절을 해석한다.
이 점은 바로 앞 제11장의 **「溫故而知新」**과도 연결해서 읽어볼 만하다. 제11장에서는 이미 배운 것을 다시 익히면서 새로운 이해를 얻는 사람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이번 제15장에서는 그 새로운 이해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學과 思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두 장의 직접적인 편집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위정편 안에서 배움이 단순한 기억이나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고 새롭게 깨닫는 과정으로 계속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전통 주석에서 罔과 殆의 세부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설명되어 왔다. 罔은 ‘어둡고 얻는 것이 없음’, ‘막막함’에 가깝게, 殆는 ‘위태로움’, ‘피로함’, ‘마음이 불안정함’ 등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배움 없는 생각과 생각 없는 배움 어느 쪽도 충분하지 않다는 해석의 중심은 일관된다.
Dr. Ryu’s Reflection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이 구절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보다 오히려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젊을 때에는 배우는 일을 주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새로운 사실을 기억하고,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은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과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을 여러 권 읽어도 그 내용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고, 오래 배운 분야에서도 왜 그런지 묻는 순간 대답이 막힐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은 많지 않더라도 하나의 문제를 오래 생각하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면서 훨씬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學而不思則罔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배움에는 어느 순간 반드시 멈추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지금 무엇을 배웠는지, 왜 그런지, 전에 알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실제 삶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새로운 정보가 계속 들어와도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쌓이기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번 장의 두 번째 절반도 그만큼 중요하게 느껴진다.
思而不學則殆.
경험이 쌓이면 자신의 생각도 많아진다. 여러 일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보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나이가 들면서 얻는 장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경험 때문에 새로운 배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을 해 보았다.”
“내 경험으로 보면 이것은 이렇다.”
이런 판단이 항상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은 변하고 새로운 사실도 계속 나타난다. 예전에는 맞았던 지식이 지금은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다시 배우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배우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지식과 다른 사람의 관점 앞에 자신의 생각을 다시 놓아 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생각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두 문장이 평생 배움을 생각하는 데 좋은 균형을 준다고 느낀다.
젊을 때에는 배우는 양에만 관심을 두기 쉽고, 나이가 들면 반대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지나치게 믿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공자는 어느 쪽에도 머물지 말라고 한다.
배운 뒤에는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는 다시 배운다.
이 과정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평생 공부한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계속 쌓는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새로운 배움 앞에서 다시 확인하며, 그렇게 조금씩 이해를 바꾸어 가는 것이 평생 배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장을 읽으며 나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요즘 많이 배우고 있는가보다, 배운 것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시 배우며 확인하고 있는가?
배움과 생각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 좋은 공부는 결국 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참고
- 『論語』, 「爲政篇」 제15장.
- 何晏 注, 邢昺 疏, 『論語注疏』, 「爲政第二」.
- 朱熹, 『朱子語類』, 「論語六·爲政篇下·學而不思章」.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