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한 장씩 읽기

학이편(學而篇) 제1장 |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면

Dr. Ryu | 논어 2026. 8. 24. 10:49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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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독음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簡體字

子曰:“学而时习之,不亦说乎?有朋自远方来,不亦乐乎?人不知而不愠,不亦君子乎?”

Pinyin

Zǐ yuē: “Xué ér shí xí zhī, bù yì yuè hū? Yǒu péng zì yuǎnfāng lái, bù yì lè hū? Rén bù zhī ér bù yùn, bù yì jūnzǐ hū?”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때에 맞추어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문법으로 읽어보기

이 장은 세 개의 질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문장 모두 不亦~乎, 즉 “또한 ~하지 아니한가?”라는 같은 구조를 사용한다. 공자는 배움의 기쁨에서 시작해 벗과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나아가고,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1. 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은 ‘배우다’라는 뜻이다. 는 앞뒤의 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여기에서는 ‘그리고’, ‘~하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時習之에서 는 ‘때에 맞추어’, 은 배운 것을 반복하여 익히는 것을 뜻하며, 는 앞에서 말한 배움의 내용을 가리킨다.

不亦~乎는 『논어』에서 자주 만나는 반문의 형식이다. 직역하면 “또한 ~하지 아니한가?”라는 뜻으로, 상대에게 단순히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라기보다 화자의 생각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은 여기에서 ‘설’이 아니라 ‘열’로 읽으며 ‘기쁘다’라는 뜻이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學 / 而 / 時習之 / 不亦說乎배우다 / 그리고 / 때에 맞추어 그것을 익히다 /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공자가 ‘배움’만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음에 이 이어진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과 배운 것을 반복해서 자신의 것으로 익히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정이다. 『논어』의 첫 문장은 배움의 기쁨을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서 찾기보다 그것을 계속 익혀가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

 

한자 뜻과 읽기

學(배울 학) · 而(말 이을 이) · 時(때 시) · 習(익힐 습) · 之(갈 지) · 不(아닐 불) · 亦(또 역) · 說(기쁠 열) · 乎(어조사 호)

 

2.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는 ‘있다’, 은 ‘벗’을 뜻한다. 는 출발점을 나타내어 ‘~로부터’, 遠方은 ‘먼 곳’, 는 ‘오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有朋自遠方來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다”라는 구조가 된다.

뒤의 不亦樂乎 역시 첫 문장과 동일한 반문 형식이다. 여기에서 은 ‘즐겁다’라는 뜻으로 ‘락’으로 읽는다. 앞 문장의 說(열)이 배우고 익히는 데서 생기는 내적인 기쁨에 가깝다면, 이 문장의 樂(락)은 뜻을 함께하는 사람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볼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有朋 / 自遠方 / 來 / 不亦樂乎벗이 있다 / 먼 곳으로부터 / 오다 /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에서 말하는 은 단순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만을 뜻한다고 보기 어렵다. 함께 배우고 뜻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문장의 배움이 개인의 수양에서 시작했다면, 두 번째 문장에서는 그 배움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교류로 넓어진다.

 

한자 뜻과 읽기

有(있을 유) · 朋(벗 붕) · 自(스스로 자) · 遠(멀 원) · 方(모 방) · 來(올 래) · 不(아닐 불) · 亦(또 역) · 樂(즐길 락) · 乎(어조사 호)

 

3.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이 문장에서 해석에 특히 주의할 부분은 人不知이다. 글자 그대로는 ‘사람이 알지 못한다’이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는 앞뒤 내용을 연결하고, 不慍에서 은 마음속으로 성내거나 원망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人不知而不慍은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어지는 不亦君子乎는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반문이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人不知 / 而 / 不慍 / 不亦君子乎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다 / 그러나 / 원망하지 않다 /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앞의 두 문장이 배움과 벗이라는 비교적 즐거운 상황을 이야기했다면, 마지막 문장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옮겨간다. 자신이 노력하고 배우더라도 다른 사람이 반드시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바로 그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군자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한다.

 

한자 뜻과 읽기

人(사람 인) · 不(아닐 불) · 知(알 지) · 而(말 이을 이) · 慍(성낼 온) · 亦(또 역) · 君(임금 군) · 子(아들 자) · 乎(어조사 호)


뜻을 풀어 읽기

『논어』의 첫 장은 짧지만 세 단계의 흐름을 보여준다. 첫째는 배우고 익히는 기쁨, 둘째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과 만나는 즐거움, 셋째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첫 문장의 學而時習之에서 배움은 한 번 알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배우고, 다시 익히고, 시간이 지나 다시 확인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것이 되어간다. 그래서 배움의 기쁨은 ‘많이 아는 것’ 자체보다 배운 것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 속에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시선이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넓어진다. 혼자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관심과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 생각을 나누는 일 또한 배움의 일부이다. 멀리 있던 벗이 찾아온다는 것은 단순한 방문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배움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기쁨을 뜻한다.

 

마지막 문장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배우고 노력하고 뜻을 세웠다고 해서 반드시 세상이 그것을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음이 흔들리고 원망에 빠지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평가에만 맡기지 않는 사람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君子의 모습이다.

 

결국 이 세 문장은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배움에서 시작하여 사람과의 관계로 나아가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이르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배경과 맥락

『논어』는 공자가 직접 한 권의 책으로 집필한 저술이라기보다 공자와 제자들의 말과 대화를 후대의 제자들이 모아 정리한 기록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전해지는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이편(學而篇)은 그 첫 번째 편이다.

 

각 편의 이름은 대체로 해당 편 첫 장의 앞부분에서 따왔다. 學而篇이라는 이름 역시 첫 문장인 學而時習之의 ‘學而’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학이’는 처음부터 독립된 철학 개념을 제목으로 붙였다기보다 편을 구별하기 위해 첫 구절을 사용한 명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논어』 전체가 바로 , 즉 배움이라는 글자로 시작한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많은 독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배움은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익히고, 사람과 나누고,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지켜가는 문제까지 이어진다. 『논어』의 첫 장이 이후에 펼쳐질 수양과 관계, 군자의 문제를 짧은 세 문장 안에 압축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는 이유이다.


Dr. Ryu’s Reflection

『논어』의 첫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자는 보다 오히려 이다. 젊었을 때에는 배운다는 말을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웠다. 새로운 학교에 가고, 새로운 전공을 공부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무엇인가를 한 번 배웠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얼마나 오래 되풀이하고 내 삶 속에서 다시 사용했는가가 더 중요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 문장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예전에 배웠던 것을 다시 공부해야 할 때도 있고, 익숙했던 방법을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때도 있다. 한 번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직접 해보면 다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時習之는 단순한 복습이라기보다 삶의 여러 시기에 배운 것을 다시 꺼내어 익히고 새롭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문장의 有朋自遠方來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배움이 오래 지속되려면 혼자만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 다른 경험을 듣고,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생각이 더 깊어진다. ‘벗’은 반드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질문을 품고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배움의 벗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人不知而不慍. 살아가다 보면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도 있고,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다. 젊을 때에는 그것이 크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알아주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논어』는 첫 장부터 거창한 성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배우고, 익히고, 벗과 나누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인생의 후반부에 다시 『논어』를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오래전에 읽었던 문장을 다시 펼쳤는데, 문장은 그대로인데 읽는 사람이 달라져 있다.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힌다.

 

『논어』의 첫 문장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꽤 잘 어울리는 첫 문장이다.


참고

  • 『論語』 學而篇 第一章
  • James Legge, The Chinese Classics, Vol. I: Confucian Analects
  • Edward Slingerland, Confucius: Analects, Hackett Publishing, 2003.
  • Yang Bojun (楊伯峻), Lunyu Yizhu (論語譯注), Zhonghua Book Company.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論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