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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편(爲政篇) 제7장 | 효는 단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아니다

Dr. Ryu | 논어 2026. 9. 4. 14:02

원문

子游問孝。子曰:「今之孝者,是謂能養。至於犬馬,皆能有養;不敬,何以別乎?」

독음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簡體字

子游问孝。子曰:“今之孝者,是谓能养。至于犬马,皆能有养;不敬,何以别乎?”

Pinyin

Zǐ Yóu wèn xiào. Zǐ yuē: “Jīn zhī xiào zhě, shì wèi néng yǎng. Zhì yú quǎn mǎ, jiē néng yǒu yǎng; bù jìng, hé yǐ bié hū?”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자유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오늘날 효라고 하는 것은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먹여 기름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문법으로 읽어보기

1. 子游問孝

자유문효

 

子游는 공자의 제자 자유이며,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으로 전해진다. 은 ‘묻다’, 는 ‘효’를 뜻하므로 문장 자체는 “자유가 효에 대해 물었다”라는 간단한 구조이다. 『논어주소』에서도 자유를 공자의 제자이며 성은 言, 이름은 偃이라고 설명한다.

 

위정편에서는 제5장부터 효에 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맹의자와 맹무백에 이어 이번에는 자유가 공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공자는 앞의 두 사람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지 않고 이번에는 養(봉양)敬(공경)의 차이를 중심으로 효를 설명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子游 / 問 / 孝
자유가 / 물었다 / 효를

 

즉, “자유가 효에 대해 물었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子(아들 자) · 游(놀 유) · 問(물을 문) · 孝(효도 효)

 

2. 今之孝者,是謂能養

금지효자, 시위능양

 

은 ‘지금, 오늘날’, 는 앞뒤 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孝者는 ‘효라고 하는 것’ 또는 ‘효라는 것은’이라는 뜻이다. 은 여기에서 단순히 ‘기르다’가 아니라 부모에게 음식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봉양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今之孝者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효는’이라는 뜻이고, 是謂能養은 문맥상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을 효라고 한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여기에서 봉양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생활을 돌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그것만으로 효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논어주소』 역시 이 구절을 당시 사람들이 부모에게 음식으로 봉양하는 것만을 효라고 여겼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今之 / 孝者 / 是謂 / 能養
오늘날의 / 효라는 것은 / 이른바 / 잘 봉양하는 것

 

즉, “오늘날 효라고 하는 것은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이미 공자의 문제 제기가 시작된다. 효의 외형은 갖추고 있지만 그 안에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빠진 것이 무엇인지는 마지막 문장의 不敬에서 분명해진다.

 

한자 뜻과 읽기

今(이제 금) · 之(갈 지) · 孝(효도 효) · 者(놈 자) · 是(이 시) · 謂(이를 위) · 能(능할 능) · 養(기를 양)

 

3. 至於犬馬,皆能有養

지어견마, 개능유양

 

至於는 ‘~에 이르러서는’, 犬馬는 ‘개와 말’, 는 ‘모두’, 은 ‘먹이고 기르다, 봉양하다’라는 뜻이다. 이 부분은 짧은 문장이지만 전통적으로 해석이 두 갈래로 나뉘어 왔기 때문에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하나는 개는 집을 지키고 말은 사람을 대신해 수고하므로, 개와 말도 인간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도 개와 말을 먹여 기르므로, 부모를 단지 먹여 봉양하기만 한다면 동물을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해석이다. 『논어주소』는 이 두 가지 해석을 모두 전하고 있으며, 주희의 『논어집주』는 후자의 방향, 즉 사람이 개와 말을 먹여 기르는 것과 부모를 공경 없이 봉양하는 일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至於 / 犬馬 / 皆 / 能有養
~에 이르러서도 / 개와 말은 / 모두 / 먹여 기름이 있다

 

즉, 대표적인 해석에 따르면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먹여 기른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해석을 따르더라도 공자가 강조하려는 결론은 같다. 단지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는 것만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효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자 뜻과 읽기

至(이를 지) · 於(어조사 어) · 犬(개 견) · 馬(말 마) · 皆(다 개) · 能(능할 능) · 有(있을 유) · 養(기를 양)

 

4. 不敬,何以別乎

불경, 하이별호

 

이 문장이 이번 장의 결론이다. 은 ‘공경하다, 존중하다’라는 뜻이고, 不敬은 ‘공경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何以는 문자 그대로는 ‘무엇으로’이며, 은 ‘구별하다’, 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다. 따라서 何以別乎“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라는 뜻이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不敬 / 何以 / 別 / 乎
공경하지 않는다면 / 무엇으로 / 구별하겠는가 / ?

 

즉,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라는 뜻이다.

 

앞에서 공자는 당시 사람들이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을 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개와 말의 예를 들어 물질적으로 먹이고 돌보는 행위만으로는 효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바로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기준이다.

주희 역시 養을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공경이 따르지 않는다면 개와 말을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강한 경계의 말로 이 구절을 풀이한다.

 

한자 뜻과 읽기

不(아닐 불) · 敬(공경 경) · 何(어찌 하) · 以(써 이) · 別(나눌 별) · 乎(어조사 호)


뜻을 풀어 읽기

이 장에서 공자는 효를 설명하면서 먼저 당시 사람들이 효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꺼낸다. 부모에게 먹을 것을 드리고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마련해 드리는 것, 곧 을 잘하는 것이 효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효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래서 공자는 일부러 개와 말이라는 매우 강한 비유를 사용한다. 전통 주석에서는 이 부분의 구체적인 문장 구조를 두 가지로 해석해 왔지만, 어느 쪽을 따르든 마지막 질문이 가리키는 곳은 같다.

 

「不敬,何以別乎?」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부모에게 좋은 음식을 드리고 생활비를 마련해 드려도, 말을 함부로 하고 부모의 생각이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행동만으로 효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공자의 질문은 바로 여기를 향한다. 효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만이 아니라, 그 부모를 한 사람으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이다.

 

앞 장에서 공자는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효를 바라보았다. 이번 장에서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 즉 공경의 태도를 강조한다. 제5장의 禮, 제6장의 부모의 걱정, 그리고 이번 제7장의 敬을 이어서 읽으면 효가 단순히 하나의 행동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효는 봉양을 포함하지만 봉양만은 아니다.

먹이고 돌보는 행동 위에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가 함께 놓일 때 비로소 그것은 사람 사이의 효가 된다.


배경과 맥락

자유(子游)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이다. 전통 자료에서는 오나라 사람이며 공자보다 마흔다섯 살 어렸다고 전한다. 『논어주소』는 자유가 효를 실천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효에는 반드시 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친 장으로 설명한다.

 

특히 「至於犬馬,皆能有養」은 오래전부터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한 해석은 개가 집을 지키고 말이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하므로 이들 역시 사람을 ‘봉양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해석은 사람이 개와 말도 먹여 기르므로 부모를 단순히 먹여 드리는 것만으로는 동물을 기르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논어주소』에는 두 해석이 모두 실려 있고, 주희는 후자의 해석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두 해석의 결론은 모두 공경이 없는 봉양만으로는 효라고 할 수 없다는 데 모인다.

 

이 장을 앞의 두 장과 함께 읽으면 공자의 교육 방식도 눈에 들어온다. 맹의자에게는 禮를 어기지 않는 것을, 맹무백에게는 부모의 걱정을, 자유에게는 敬을 강조했다. 『논어집해의소』에서도 같은 효를 묻는데 공자의 답이 다른 이유에 대해, 질문자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거나 당시의 잘못된 풍조를 교정하기 위해 각각 다른 측면을 들어 가르친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위정편의 효에 관한 연속 문답은 서로 다른 정의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장을 함께 읽을 때 禮·걱정·敬·태도라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모여 공자가 말한 효의 폭넓은 모습을 이루게 된다.


Dr. Ryu’s Reflection

젊었을 때에는 부모님께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무엇인가를 해 드리는 모습을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좋은 음식을 사 드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련해 드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생활에 도움을 드리는 일이다. 실제로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면 이런 도움은 중요해진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챙겨 드리는 일도 자녀가 할 수 있는 분명한 책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장에서 공자는 그런 봉양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不敬,何以別乎?」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이 말은 꽤 날카롭다. 부모를 위해 돈을 쓰고 필요한 것을 모두 마련해 드리면서도 정작 부모의 말을 귀찮아하거나,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며 부모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한다면 과연 그것을 충분한 효라고 할 수 있을까. 외형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모시고 있지만 그 관계 안에서 부모가 존중받고 있지 않다면 공자가 말하는 敬은 빠져 있는 셈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문제는 반대편에서도 보게 된다. 부모에게도 자녀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모 역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언제나 자녀에게 따라야 할 기준처럼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敬을 일방적인 복종으로 이해한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나는 오늘의 가족 관계에서 공경이란 상대를 독립된 한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녀의 삶을 존중하고, 자녀는 부모의 나이와 경험, 감정과 존엄을 존중한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어쩌면 그런 작은 태도들이 현대의 가족 안에서 敬이 나타나는 방식일 것이다.

 

특히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녀들은 부모를 점점 ‘돌봐야 할 사람’으로만 바라보기 쉬워진다. 건강은 어떤지, 병원은 다녀왔는지, 약은 먹었는지, 생활비는 충분한지 챙겨야 할 것이 많아진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돌봄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한 가지를 잊기 쉬울 수도 있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자가 養만으로는 부족하고 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을 해 드렸는가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때로 어떤 얼굴로, 어떤 말투로, 어떤 마음으로 부모를 대했는가일 수 있다.

 

효를 돈이나 봉양의 크기로만 계산할 수 없다면, 이번 장은 나에게 한 가지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을 남긴다.

나는 가까운 사람을 돌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을 존중하면서 돌보고 있는가?


참고

  • 『論語』, 「爲政篇」 제7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爲政第二」.
  • 何晏 注, 邢昺 疏, 『論語注疏』, 「爲政第二」.
  • 皇侃, 『論語集解義疏』, 卷一.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