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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편(爲政篇) 제6장 |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

Dr. Ryu | 논어 2026. 9. 4. 09:23

원문

孟武伯問孝。子曰:「父母唯其疾之憂。」

독음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簡體字

孟武伯问孝。子曰:“父母唯其疾之忧。”

Pinyin

Mèng Wǔbó wèn xiào. Zǐ yuē: “Fùmǔ wéi qí jí zhī yōu.”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孟武伯問孝

맹무백문효

 

孟武伯은 맹무백이라는 인물이고, 은 ‘묻다’, 는 ‘효’를 뜻한다. 따라서 문장 자체는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라는 간단한 구조이다. 맹무백은 바로 앞 장인 위정편 제5장에서 공자에게 효를 물었던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이다. 앞 장에서 아버지 맹의자에게 공자는 「無違」라고 답하고, 그 의미를 부모를 살아 계실 때부터 돌아가신 뒤까지 禮(예)로 섬기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아들 맹무백이 같은 효를 묻자 공자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위정편의 효에 관한 문답을 읽을 때 중요한 부분이다. 공자는 ‘효란 무엇인가’라는 같은 질문에 하나의 정의를 반복하지 않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점을 달리 강조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孟武伯 / 問 / 孝
맹무백이 / 물었다 / 효를

 

즉,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孟(맏 맹) · 武(호반 무) · 伯(맏 백) · 問(물을 문) · 孝(효도 효)

 

2. 父母唯其疾之憂

부모유기질지우

 

이 짧은 구절은 문장 자체보다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父母는 ‘부모’, 는 ‘오직, 다만’, 은 ‘병’, 는 ‘걱정하다’라는 뜻이다. 가운데 있는 는 문맥상 자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따라서 전체 문장은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서 는 현대 중국어의 단순한 소유격 ‘~의’로 이해하기보다, 「其疾」과 「憂」 사이를 연결하여 ‘그 병을 걱정함’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역할로 볼 수 있다. 고전 한문에서는 이처럼 목적어나 주제를 앞으로 내세우면서 之를 사용하는 구조가 나타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父母 / 唯 / 其疾 / 之 / 憂
부모는 / 오직 / 그 자식의 병을 / — / 걱정한다

 

즉,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자의 뜻은 단순히 ‘부모는 자녀가 아픈 것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있지 않다. 전통적인 주석에서는 부모에게 자녀의 질병 외에는 다른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의 몸과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효라는 의미로 이 문장을 읽어 왔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완전히 막을 수 없지만, 잘못된 행동이나 경솔한 생활로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은 스스로 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희의 해석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항상 자녀가 병들까 걱정한다는 점을 먼저 강조한다. 자녀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헤아린다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고 행동을 삼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 효는 부모에게 무엇을 해 드리는 행동만이 아니라, 부모가 불필요하게 걱정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잘 돌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한자 뜻과 읽기

父(아비 부) · 母(어미 모) · 唯(오직 유) · 其(그 기) · 疾(병 질) · 之(갈 지) · 憂(근심 우)


뜻을 풀어 읽기

공자의 대답은 이번에도 매우 짧다.

「父母唯其疾之憂。」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으면 너무 당연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자녀가 아프면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이 말을 ‘효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공자는 부모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알고 있는 자녀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아픈 것만으로도 걱정한다. 그렇다면 자녀가 자신의 부주의한 행동이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부모에게 또 다른 걱정을 끼친다면 어떨까. 전통 주석에서는 바로 이 점을 중요하게 보았다. 질병처럼 피하기 어려운 일 때문에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밖의 일에서는 가능한 한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자신의 몸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효의 방향이 조금 달리 보인다. 효라고 하면 흔히 부모에게 무엇을 해 드리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용돈을 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자주 찾아뵙는 일처럼 부모를 향해 하는 행동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공자는 이 장에서 시선을 오히려 자녀 자신의 삶으로 돌린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하지 않고, 경솔한 행동으로 부모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가는 것 역시 효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앞 장에서 공자가 효를 禮에 맞게 부모를 섬기는 일과 연결했다면, 이번 장에서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출발한다. 효란 부모에게 무언가를 많이 해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배경과 맥락

맹무백(孟武伯)은 앞 장에 등장한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이다. 이름은 체(彘)로 전해지며, 노나라의 유력 가문인 맹손씨 계통의 인물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연이어 공자에게 효를 물었다는 점은 위정편 제5장과 제6장을 함께 읽게 만드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버지 맹의자에게 공자는 「無違」, 즉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살아 계실 때에는 禮로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禮로 장례와 제사를 행하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아들 맹무백에게는 부모가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는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전통 주석 가운데에는 공자가 맹무백의 평소 성향이나 행동을 염두에 두고 이런 답을 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다만 『논어』 본문 자체에는 맹무백의 어떤 구체적인 행동 때문에 이 말을 했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사실처럼 단정하기보다는 질문자의 상황에 따라 공자가 효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하다.

 

「父母唯其疾之憂」에는 또 하나의 해석 문제가 있다. 其疾을 누구의 병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전통 해석에서는 ‘자식의 병’으로 보아 부모에게 병 이외의 다른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라고 설명하지만, 다른 읽기에서는 부모의 병을 자녀가 특별히 걱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희를 비롯한 전통적인 주류 해석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병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자녀가 그 마음을 헤아려 자신의 몸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뜻을 중심에 둔다. 이번 원고도 이러한 대표적 해석을 기본으로 하되, 짧은 원문이 가진 해석상의 여지는 남겨 두는 것이 적절하다.

 

이 장에서 시작된 질문은 다음 장에서도 계속된다. 위정편 제7장에서는 자유(子游)가 효를 묻는데, 공자는 당시 사람들이 부모를 먹여 봉양하는 것만을 효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제5장의 , 제6장의 부모의 걱정, 그리고 제7장의 공경을 차례로 읽어 가면 공자가 말하는 효가 단순한 하나의 행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 점점 분명해진다.


Dr. Ryu’s Reflection

젊었을 때에는 부모님이 왜 그렇게 자식 걱정을 많이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 늦게 들어가도 걱정하시고, 어디를 멀리 간다고 하면 걱정하시고, 몸이 조금 좋지 않다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셨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때로 그런 걱정이 지나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부모가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도 부모의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녀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질수록 부모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줄어들고,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려야 하는 일은 많아진다. 자식이 어릴 때에는 손을 잡아 줄 수 있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손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장의 **「父母唯其疾之憂」**를 읽으면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공자는 자녀에게 부모를 위해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자녀를 얼마나 걱정하는 사람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신의 몸과 삶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몸을 소중히 한다’는 것을 단순히 건강관리만의 문제로 좁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건강을 잘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에 내맡기지 않는 것, 감당하지 못할 일을 무모하게 벌이지 않는 것,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는 일이다.

 

효라고 하면 우리는 부모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계산하기 쉽다. 얼마나 자주 찾아뵈었는지, 무엇을 사 드렸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지를 떠올린다. 모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장은 효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한다.

 

내가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도 부모에게 드릴 수 있는 하나의 평안일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 말은 자녀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 역시 자신의 건강과 삶을 가능한 한 잘 돌보는 것이 자녀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덜어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젊을 때에는 자녀가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는 것을 효라고 생각했다면, 나이가 든 뒤에는 부모 또한 자신의 몸과 생활을 잘 관리하여 자녀에게 지나친 걱정을 주지 않는 것이 가족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결국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는, 어쩌면 “나는 내 삶을 잘 돌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참고

  • 『論語』, 「爲政篇」 제6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爲政第二」.
  • 何晏 注, 邢昺 疏, 『論語注疏』, 「爲政第二」.
  • 楊伯峻, 『論語譯注』, 中華書局.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