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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편(為政篇) 제3장 | 법과 형벌만으로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을까

Dr. Ryu | 논어 2026. 9. 2. 06:59

원문

子曰:「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

독음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簡體字

子曰:“道之以政,齐之以刑,民免而无耻;道之以德,齐之以礼,有耻且格。”

Pinyin

Zǐ yuē: “Dǎo zhī yǐ zhèng, qí zhī yǐ xíng, mín miǎn ér wú chǐ; dǎo zhī yǐ dé, qí zhī yǐ lǐ, yǒu chǐ qiě gé.”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백성을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또한 바른 데에 이르게 된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道之以政

도지이정

 

여기에서 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사 ‘도(道)’가 아니라 동사로 쓰였으며, , 즉 ‘이끌다’의 의미로 읽는다. 는 이끌어야 할 대상인 백성, 즉 民을 가리키고, 는 ‘~으로써’라는 수단을 나타내므로 以政은 ‘정령으로써’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 전체라기보다 통치자가 내리는 정령과 행정적 명령, 제도적 통치 수단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道之以政은 백성을 정령과 제도를 통해 이끌어 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道 / 之 / 以政
이끌다 / 그들을 / 정령으로써

 

즉, “백성을 정령으로 이끈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道(길 도, 여기서는 이끌 도) · 之(갈 지) · 以(써 이) · 政(정사 정)

 

2. 齊之以刑

제지이형

 

는 ‘가지런하게 하다’, ‘바르게 맞추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는 백성을 가리키며 以刑은 ‘형벌로써’라는 의미이므로, 齊之以刑은 사람들이 정해진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형벌을 기준으로 행동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齊 / 之 / 以刑
가지런하게 하다 / 그들을 / 형벌로써

 

즉, “형벌로 백성의 행동을 바로잡는다”라는 의미이다.

 

한자 뜻과 읽기

齊(가지런할 제) · 之(갈 지) · 以(써 이) · 刑(형벌 형)

3. 民免而無恥

민면이무치

 

은 백성을 뜻하고 은 ‘면하다,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면하는지가 문장에 다시 적혀 있지는 않지만 앞에서 말한 , 즉 형벌을 면한다는 의미이며, 는 앞뒤 내용을 연결하고 無恥는 ‘부끄러움이 없다’, 또는 문맥상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공자가 말하는 핵심은 사람들이 법과 형벌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처벌이 두려우면 사람은 행동을 조심할 수 있고 겉으로는 사회의 질서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이 행동은 옳지 않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벌을 받는다”에만 머문다면, 외적인 행동은 통제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내면의 변화까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民 / 免 / 而 / 無恥
백성은 / 형벌을 면하지만 / 그러나 /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즉, “백성은 처벌을 피하려 할 뿐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라고 풀 수 있다.

 

한자 뜻과 읽기

民(백성 민) · 免(면할 면) · 而(말 이을 이) · 無(없을 무) · 恥(부끄러울 치)

 

4. 道之以德

도지이덕

 

이 표현은 앞의 道之以政과 정확하게 대응한다. 앞에서는 사람을 으로 이끌었다면 여기에서는 으로 이끄는데, 이때 德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말을 가르친다는 의미라기보다 지도자 자신이 올바른 품성과 행동을 갖추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뜻한다.

 

따라서 道之以德은 지도자가 먼저 덕을 갖추고 그 모범과 신뢰를 바탕으로 백성을 이끈다는 의미에 가깝고, 이는 위정편 제1장의 **「為政以德」**과 직접 연결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道 / 之 / 以德
이끌다 / 그들을 / 덕으로써

 

즉, “덕으로 백성을 이끈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道(길 도, 여기서는 이끌 도) · 之(갈 지) · 以(써 이) · 德(큰 덕)

 

5. 齊之以禮

제지이례

 

앞의 齊之以刑과 대응하는 표현으로, 이번에는 형벌 대신 가 등장한다. 『논어』에서 禮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의 바른 태도’보다 훨씬 넓은 개념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와 역할, 사회적 규범, 의례와 행동의 기준까지 포괄한다.

 

따라서 齊之以禮는 예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를 익히고, 외부의 강제만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齊 / 之 / 以禮
가지런하게 하다 / 그들을 / 예로써

 

즉, “예로 백성을 바로잡는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齊(가지런할 제) · 之(갈 지) · 以(써 이) · 禮(예도 례)

 

6. 有恥且格

유치차격

 

이 장의 결론이 되는 표현이다. 有恥는 ‘부끄러움이 있다’, 즉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줄 안다는 뜻이고, 는 ‘또한’, ‘그리고’라는 뜻이다. 해석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글자는 인데, 전통적인 주석에서는 이를 사람이 바른 데에 ‘이른다’는 의미로 풀이해 왔으며, 주희 역시 格을 , 즉 ‘이르다’라는 뜻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有恥且格은 처벌이 무서워 잘못된 행동을 멈추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마음을 바탕으로 다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有恥 / 且 / 格
부끄러움을 알고 / 또한 / 바른 데에 이른다

 

즉,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또한 바른 데에 이르게 된다”라는 뜻이다.

 

한자 뜻과 읽기

有(있을 유) · 恥(부끄러울 치) · 且(또 차) · 格(이를 격)


뜻을 풀어 읽기

이 장을 처음 읽으면 공자가 법과 형벌을 반대하고 덕과 예만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장의 중심은 법이나 형벌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다기보다 사람이 왜 바르게 행동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 법이 있고 처벌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겉으로는 규칙을 잘 지킬 수 있지만, 감시가 사라지거나 처벌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달라질 수도 있다. 행동을 멈추게 한 힘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판단이 아니라 외부의 처벌이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러한 상태를 **「民免而無恥」**라고 표현한다. 사람은 형벌을 피할 수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德과 禮는 사람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지도자가 먼저 자신의 행동으로 기준을 보여주고, 예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지를 배우게 하면, 사람은 단순히 벌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누가 보고 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로 행동의 이유가 바뀌는 것이다.

 

바로 이 차이가 공자가 말한 와 연결된다. 여기에서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켜야 할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내면의 도덕적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공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有恥且格」, 즉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면 스스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한다.

 

결국 이 장은 사람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보다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좋은 사회는 사람들이 처벌이 두려워 잘못을 하지 않는 사회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에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공자가 政과 刑, 德과 禮를 대비한 이유는 바로 이 두 단계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배경과 맥락

AN-019는 위정편 제1장의 **「為政以德」**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제1장에서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북극성을 비유로 들어, 덕 있는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제3장에 이르면 그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하면서, 사람을 이끄는 두 가지 방식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대비하여 보여준다.

 

한쪽에는 政 → 刑 → 免 → 無恥라는 흐름이 있다. 정령과 형벌을 중심으로 사람을 다스리면 사회의 외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잘못된 행동을 억제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처벌을 피하는 데 관심을 둘 뿐 자신의 행동을 내면에서 돌아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할 수 있다. 반대편에는 德 → 禮 → 有恥 → 格이라는 흐름이 있다. 지도자가 덕으로 이끌고 예를 통해 행동의 기준을 세우면,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비를 통해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정치의 목표도 보다 분명해진다. 단순히 범죄가 적고 명령이 잘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정치와 교육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내면에 스스로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를 현대 사회에서 법과 형벌이 필요 없다는 주장으로 그대로 옮겨서는 곤란하다.

 

현대 국가는 법치와 제도적 통제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자가 살았던 시대와 오늘날의 정치·사회적 조건 역시 크게 다르다.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법의 필요 여부에 관한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외부의 규제만으로 사람의 내면까지 바꿀 수 있는가라는 공자의 질문이다.

 

이 질문은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정이나 학교, 회사에서도 규칙은 필요하지만 규칙만으로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이 그 규칙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고, 감시나 처벌이 없어도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을 가질 때 공동체의 질서는 훨씬 단단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위정편 제3장은 고대 중국의 정치론을 넘어 교육과 조직 운영, 리더십, 그리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어볼 수 있다.


Dr. Ryu’s Reflection

이 장을 읽으면서 나는 “규칙을 지키는 것”과 “규칙을 지키고 싶어지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도 규칙이 있고 회사에도 규정이 있으며 국가에는 더 많은 법과 제도가 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런 규칙은 반드시 필요하고, 여러 조직에서 생활하고 일하다 보면 규정과 절차가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규칙을 자세하게 만들어도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현실에서는 규정에 미처 적어놓지 못한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 순간 사람은 결국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지 않을 때도 같은 기준을 지킬 것인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약속을 지킬 것인지, 잘못했을 때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같은 문제는 모든 경우를 규정집에 미리 적어놓을 수 없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공자가 말한 가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지켜야 할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감시가 필요하지 않지만, 외부의 처벌만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옳은가?”보다 “이것을 해도 걸리지 않는가?”를 먼저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차이는 조직을 운영할 때 더욱 크게 나타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규정을 만들고 확인 절차와 보고 체계를 계속 추가하면 당장은 통제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규정은 많아졌는데 조직의 신뢰는 오히려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규정이 늘어나고, 규정이 늘어나면서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신뢰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리더십에는 규칙을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다시 위정편 제1장의 **「為政以德」**로 돌아가게 된다. 리더가 자신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구성원에게만 원칙을 요구한다면 아무리 많은 규정을 만들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반대로 책임자가 먼저 원칙을 지키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며, 잘못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져야 할 순간에 책임을 진다면 그러한 행동 자체가 구성원에게 하나의 기준이 된다. 공자가 말한 德과 禮도 거창한 말로만 이해하기보다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 형성되는 신뢰와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장을 오늘날의 사회에 그대로 옮겨 법과 제도보다 도덕이 중요하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법과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며, 좋은 의도와 개인의 품성만으로 복잡한 현대 사회가 운영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공자가 던진 질문에는 오래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나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바르게 행동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르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위치에 있다면, 나는 사람들을 감시해야만 움직이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有恥且格」. 형벌을 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다시 바른 곳으로 나아가는 것. 짧은 네 글자이지만, 좋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과 좋은 조직을 만드는 리더십이 결국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참고

  • 『論語』, 「為政篇」 제3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為政第二」. 주희는 「道,猶引導,謂先之也」, 「格,至也」라고 풀이하여 道를 ‘이끌다’, 格을 ‘이르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 『論語注疏』, 「為政」. 政·刑과 德·禮의 대비를 통해 백성을 이끄는 두 방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 楊伯峻, 『論語譯注』, 中華書局.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Wei Zh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