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편(學而篇) 제9장 | 마지막을 정성껏 하고 먼 조상을 기억하면

원문
曾子曰:「慎終追遠,民德歸厚矣。」
독음
증자왈: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簡體字
曾子曰:“慎终追远,民德归厚矣。”
Pinyin
Zēng Zǐ yuē: “Shèn zhōng zhuī yuǎn, mín dé guī hòu yǐ.”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증자가 말했다.
“마지막을 삼가고 먼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운 데로 돌아갈 것이다.”
문법으로 읽어보기
1. 慎終追遠
신종추원
慎은 ‘삼가다, 신중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조심한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終은 ‘마치다, 끝’이라는 뜻인데, 이 구절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람의 죽음과 장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慎終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마지막을 정성스럽고 신중하게 치르는 것을 뜻한다.
이어지는 追遠에서 追는 ‘따르다, 뒤쫓다’라는 기본 뜻을 가지지만 여기에서는 지나간 사람을 생각하고 추모한다는 의미로 읽는다. 遠은 문자 그대로 ‘멀다’라는 뜻이며, 여기에서는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사람, 즉 먼 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慎終追遠」은 단순히 장례 절차를 잘 지키라는 말이라기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마지막을 정성껏 하고,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는 태도를 말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慎 / 終
삼간다 / 마지막을
追 / 遠
추모한다 / 먼 이를
두 구절 모두 동사와 목적어가 결합한 간결한 구조이다. 慎終과 追遠이 나란히 놓이면서 가까운 죽음에서 먼 조상으로 시간의 범위가 확장된다.
한자 뜻과 읽기
慎(삼갈 신) · 終(마칠 종) · 追(쫓을 추) · 遠(멀 원)
2. 民德歸厚矣
민덕귀후의
民은 ‘백성’, 德은 ‘덕’을 뜻한다. 여기에서 民德은 백성들이 지닌 도덕적 풍속이나 사람들의 삶에 나타나는 덕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歸는 ‘돌아가다, 돌아오다’라는 뜻이다. 厚는 본래 ‘두껍다’라는 의미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나 풍속을 표현할 때에는 인정이 두텁고 성실하며 후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歸厚는 ‘두터운 데로 돌아가다’, 즉 사람들의 마음과 풍속이 더욱 후하고 인정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문장 끝의 矣는 고전 한문에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거나 판단이 확정되었음을 나타내는 어기조사이다. 이 문장에서는 「慎終追遠」의 결과로 백성의 덕과 풍속이 두터워지는 상태를 강조한다.
문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民 / 德 / 歸 / 厚 / 矣
백성의 / 덕이 / 돌아간다 / 두터운 데로 / 어조사
따라서 이 문장은 “사람들이 죽은 이를 정성껏 보내고 먼 조상을 잊지 않는다면 사회의 풍속도 자연스럽게 인정이 두터운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한자 뜻과 읽기
民(백성 민) · 德(덕 덕) · 歸(돌아갈 귀) · 厚(두터울 후) · 矣(어조사 의)
뜻을 풀어 읽기
이 장은 매우 짧다. 그러나 증자는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하여 한 사회의 도덕과 풍속이 어떻게 형성되는가까지 이야기를 넓혀간다.
「慎終追遠」을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장례를 정성스럽게 치르고 조상을 잘 추모하라는 말처럼 보인다. 실제로 전통적인 해석에서도 慎終은 부모의 상을 정성껏 치르는 일과 연결되고, 追遠은 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그들을 기억하는 일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의미는 장례와 제사의 절차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는가이다.
사람은 혼자서 시작되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있고, 그 부모에게도 부모가 있으며, 한 세대의 삶은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관계와 기억 위에서 이어진다. 죽은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는지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증자는 「慎終追遠」 다음에 곧바로 「民德歸厚矣」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정성스럽게 보내고 먼 조상을 기억하는 개인적인 행위가 왜 백성의 덕과 연결되는 것일까.
사람이 자신에게 생명을 주고 삶의 기반을 마련해 준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감사, 책임, 존중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가정에서 반복되고 공동체 안에서 이어지면 사람들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증자가 말하는 厚, 즉 ‘두터움’은 바로 이러한 인간관계의 깊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장례의 방식도 달라졌고 조상을 기억하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따라서 이 구절을 반드시 특정한 장례나 제사의 형식만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질문을 생각해 보는 편이 중요하다.
나는 나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에게 무엇을 받았으며,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짧은 장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배경과 맥락
이 장의 말을 한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 증자(曾子)이다. 증자의 이름은 삼(參)이며 공자의 제자로서 효와 자기 성찰을 중요하게 여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학이편 제4장에서도 증자는 「吾日三省吾身」이라고 하여 매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태도를 이야기했다. 제9장에서는 시선이 개인의 자기 성찰에서 가족과 조상, 나아가 사회 전체의 풍속으로 넓어진다.
「慎終追遠」은 중국의 전통적인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의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고대 사회에서 장례와 제사는 단순한 개인적 의식이 아니라 가족과 친족의 관계를 확인하고 세대 간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였다. 부모의 죽음을 정성스럽게 애도하고 조상을 기억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뿌리와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학이편 앞부분에서 반복되는 효(孝)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제2장에서 유자는 「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라고 하여 효와 제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라고 말했다. 제6장에서는 젊은이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해야 한다는 「入則孝」가 등장한다. 그리고 제9장에서는 부모와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이 죽음 이후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학이편에서 효는 단순히 살아 있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행동으로만 제시되지 않는다.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 마음,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로 확장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증자가 「慎終追遠」을 개인의 덕에서 끝내지 않고 「民德歸厚矣」, 즉 백성의 덕과 사회의 풍속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이는 『논어』에서 개인의 수양과 공동체의 질서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잘 보여준다.
한 사람이 부모와 조상을 존중하고 자신이 받은 것을 기억하는 태도는 가족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쉽게 끊어지지 않고 더욱 두터워질 수 있다. 가정에서 시작된 마음이 공동체의 풍속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民德歸厚矣」라는 말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Dr. Ryu’s Reflection
나이가 들면서 이전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말들이 어느 순간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慎終追遠」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이다. 젊었을 때 이 구절을 읽었다면 아마 장례와 조상을 섬기는 전통적인 유교의 가르침 정도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온 시간이 길어지고 나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는다. 부모에게 생명을 받고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스승에게 배우고 친구와 동료에게 도움을 받는다. 때로는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바쁘게 살아가느라 감사하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追遠이라는 두 글자가 단순히 먼 조상을 추모한다는 의미보다 조금 더 넓게 다가온다. 지나간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붙잡고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혼자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조금만 뒤를 돌아보면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놓여 있다.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어려운 시기에 곁을 지켜준 사람, 길을 열어준 사람, 때로는 따끔한 말을 해준 사람까지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조금씩 영향을 주었다.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면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 달라진다.
증자는 「慎終追遠」하면 「民德歸厚矣」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 두 문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장례를 잘 치르고 조상을 기억한다고 해서 어떻게 사회 전체의 덕이 두터워질 수 있을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사이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놓여 있는 것 같다.
내가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기 어렵다. 부모에게 받은 것을 기억하면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질 수 있고, 스승에게 받은 것을 기억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려는 마음도 생길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조금 더 따뜻하게 손을 내밀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德이 厚해진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거창한 도덕적 구호 때문에 사회가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금씩 두터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가족의 형태도 달라지고 장례와 제사의 문화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떤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어떤 전통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나는 그것 자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이 달라진다고 해서 기억해야 할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까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 한 장을 다시 보는 것도 좋고, 가족들과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은사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이 장을 읽으며 나 역시 잠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 삶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 가운데 나는 누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을 때 충분히 전했는가. 그리고 내가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慎終追遠,民德歸厚矣。」 불과 아홉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마지막을 대하는 태도, 지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 그리고 그 기억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점점 가벼워지는 시대일수록 증자가 말한 厚, ‘두터움’이라는 한 글자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잊지 않는 마음이 결국 사람 사이를 두텁게 만든다.
참고
- 『論語』, 「學而篇」 제9장.
- 朱熹, 『四書章句集注』, 「論語集注」 學而篇.
- James Legge, The Chinese Classics, Vol. I: Confucian Analects, 1861.
- Chinese Text Project, The Analects: Xue Er.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 관련 한문·한자 자료.